2017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지금 다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물복지, 글로벌 자본주의, 인간성이라는 보편적이고도 날카로운 주제를 다룬 이 작품은, 2024년 현재 더욱 뚜렷해진 사회적 의식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옥자’가 던지는 동물 복지의 윤리적 화두, 봉준호 감독의 일관된 영화적 세계관,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영화 평론가의 시선으로 심도 있게 풀어본다.
동물복지의 시선으로 본 옥자
영화 ‘옥자’는 전통적인 동화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동물복지라는 비판적 현실 인식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녹여낸 작품이다. 극의 중심축에 있는 미자와 옥자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의 범주를 넘어, 현대 사회가 동물과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의 축소판으로 기능한다.
감독은 미란도 기업이라는 가상의 다국적 기업을 통해,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의 잔혹한 실상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풍자가 아닌, 육류 산업의 비윤리적 시스템에 대한 직설적 고발이며, 그 묘사는 실로 충격적이다. 옥자가 실험실에서 겪는 학대 장면은 영화 전반의 정서를 결정짓는 전환점이다.
이 장면은 시청자의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동물을 대상화하는 산업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끌어낸다. 특히 미란도 기업의 유전자 조작을 통한 ‘슈퍼돼지’ 개발은 현대 생명공학의 윤리적 경계를 자극한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포장 아래 감춰진 폭력의 실체를 봉준호는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옥자’는 동물권이라는 비교적 낯선 개념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낸 드문 작품이다. 이 영화 이후 실제로 채식 인구가 증가하고 동물권 NGO들이 옥자를 언급하며 캠페인을 진행한 사례는, 영화가 사회적 담론을 어떻게 촉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봉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감상자가 도망칠 수 없도록 명료하고 단호하게 던지고 있다.
봉준호 작품의 연장선으로서의 옥자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독특하면서도 일관된 정체성을 지닌 작품이다. 그의 영화는 항상 특정한 사회 구조나 이념, 시스템을 문제 삼아왔다. ‘괴물’에서는 정부와 관료주의의 무능을, ‘설국열차’에서는 계급의 잔혹함을, ‘기생충’에서는 빈부 격차의 현실을 드러냈다.
‘옥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글로벌 자본주의와 생명 윤리에 대한 비판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면서도, 그의 기존 미학과 뚜렷하게 연결된다. 장르 혼합은 봉준호 영화의 중요한 특징인데, ‘옥자’에서 그 실험은 한층 세련되고 대담하다. 코믹한 요소와 그로테스크한 폭력, 따뜻한 감정과 차가운 현실이 기묘하게 공존하며, 관객은 감정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채 끝까지 몰입하게 된다.
이처럼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은 단지 스타일이 아니라, 봉 감독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장치다. 웃음 끝에 남는 씁쓸함, 감동 뒤에 덮쳐오는 분노가 바로 그 세계관의 본질이다. 또한 캐릭터 구성 역시 매우 봉준호적이다. 미자는 자연과 공존하는 순수한 인물이며,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회적 입장을 대변한다. 루시 미란도는 자본주의의 이중성을 상징하며, ALF는 급진적 이상주의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들은 모두 극의 중심에서 옥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갈린다.
‘옥자’라는 존재는 거울처럼, 인간 개개인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투영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봉준호는 이 작품을 통해 한국이라는 로컬을 넘어 글로벌 사회 전체를 겨냥한 서사를 구축했다. 이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과의 협업을 통해 가능했으며, 그 결과 ‘옥자’는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넷플릭스 작품으로 초청되는 기록을 세웠다. ‘옥자’는 단지 한 편의 영화가 아닌, 봉준호 영화 세계의 확장과 진화를 보여주는 결정적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옥자’가 남긴 가장 큰 울림은 바로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영화는 일관되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선악의 이분법이 아닌, 복잡하게 얽힌 인간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모순에 주목한다.
이는 현대 윤리학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미자는 순수하지만, 결국 옥자를 되찾기 위해 돈이라는 현실적인 도구를 선택한다. 이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상징한다. 봉준호는 이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제시한다. 아무리 선의로 출발한 행동이라도, 결과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는 ‘기생충’에서의 반전처럼, 이상주의가 붕괴되는 순간을 통해 인간 본성의 본질을 고찰하게 만든다. 또한 영화 속 ALF의 인물들도 단순한 ‘정의로운 구원자’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모순에 빠지고, 정의와 위선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는 인간의 도덕성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봉준호는 그러한 인간의 복합성과 불완전함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더 이상 관객이 ‘선한 인간’이라는 개념에 안주할 수 없도록 만든다.
‘옥자’는 그렇게 인간성의 경계와 의미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영화다. 동물을 다룬 영화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깊은 회의와 애정이 동시에 담겨 있다. 감독은 인간이 동물에게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인간만이 가진 감정, 연민, 사랑의 가능성 역시 포기하지 않는다. 이 양면성 속에서 ‘옥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리고 그 파고든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결론
‘옥자’는 단순한 동화도, 단순한 사회비판 영화도 아니다. 동물복지, 자본주의, 인간성이라는 다층적 주제를 감정과 서사의 완벽한 균형 속에서 풀어낸 이 작품은, 2024년 오늘 다시 보아야 할 영화로 손꼽힌다. 봉준호 감독의 통찰력과 연출력이 만들어낸 ‘옥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